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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작은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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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11. 13:03 2008
[컬럼] 나이 60에 모하비 타는 이유

 
강 지 원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대표
/ 청소년잡지
‘큰바위얼굴’ 발행인

사람에게 무엇인가. 이기(利器)인가, 장식품인가.
나이 60이 다 된 사람이 모하비에서 내린다.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쳐다본다. 고급세단에서 내릴 듯한 사람이 의외의 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차쪽을 쳐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차 좋아요? 모하비 홍보대사이시라면서요?”

나는 현직 변호사다. 그리고 꽤 유명인사에 속하는 모양이다. 길가를 지나다 보면 수시로 “TV에서 뵈었어요”하고 인사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년엔 우리나라 나이로 60이다. 그러니 대충 생각하기로 늘 고급세단을 타고 다닐 것으로 연상될 것이다. 실제로 내 또래의 많은 동료변호사들은 그런 차들을 타고 다닌다. 심지어 나의 아내에게도 국가에서 고급승용차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세단 아닌 다른 차를 좋아할까?

내가 SUV를 타기 시작한 것은 모하비가 처음이 아니다. 아마 10년도 훨씬 넘었을 것이다. 당시 화제를 일으키며 발표된 신차가 있었는데 그 ‘탱크’같은 느낌이 너무 좋아 덜커덕 샀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세단승용차를 탔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탔던 그 승용차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그 차종은 밝히지 않겠다. 별로 칭찬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허풍투성이의 부끄러운 차였던 것이다. 자동차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유식한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다. 그러나 요점은 이거다. 엔진은 쥐꼬리만한데 덩치만 큼직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외국의 어떤 차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있었다. 그러나 속 내용은 형편없었다.

거기에서 나는 우리 한국인의 얼굴을 보았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겉으로 크게 보이는 것을 좋아할까. 그렇게도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을까. 그런 심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늘 지적되는 말이지만 이 나라에는 중대형차가 너무 많다. 너나없이 ‘큰차’를 좋아하는 것이다. 꽤 괜찮은 외국에 가보자. 온통 소형차들이다. 그 소형차들은 잘만 굴러다니고 그 나라도 잘만 굴러간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보다 어디가 못나서 작은 차를 끌고 다닐까. 아니다. 실용적이고 실속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 허풍풍조에 대해 나는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런 풍조는 자동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전반에 걸쳐 이같은 외향적 허풍풍조가 한심할 정도에 이르러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허풍은 가벼운 허세를 부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심하면 완전 속임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남을 속여 실상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진짜 사기꾼들은 으리으리한 차를 타고 다닌다. 자신의 실제모습을 위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심리가 어디 사기꾼들뿐일까. 우리네 심리 속에도 크고 작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속임수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눈앞의 이익을 얻어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들통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신용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신뢰는 저 끝으로 무너져 내린다. 신용은 돈이다. 왜 그런가. 신용이 있으면 사람들이 믿고 투자를 한다. 돈도 빌려준다. 물건도 믿고 사간다. 일도 믿고 맡긴다. 그러니 돈을 벌려면 신용부터 쌓아야 한다. 신용을 쌓는 일은 곧 부자되는 길인 것이다.

어디 돈뿐인가. 신용에는 인격적인 존중이 뒤따른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신뢰사회가 된다. 다시 돈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신뢰사회는 곧 부자사회다. 서로가 믿음으로 연결되므로 구태여 신뢰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신뢰를 깨뜨렸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한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 부자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굳이 부자타령 뿐인가.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 서로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차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고하다. 실속있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값이 비싼가, 싼가도 그 다음이다. 모양이 멋있느냐, 아니냐도 그 다음이다. 차는 사람의 인격이다. 우리 국민이 모두 자신의 인격을 차를 통해 나타냈으면 좋겠다.

차에 관해서 나에게도 한 가지 꿈이 있었다. ‘버스 같이 큰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참 황당한 생각이었다.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꿈꾸어 본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진짜 ‘밴’같은 차일 것이다. 그런데 잠시 다시 생각해 본 결과는 참담했다. 세상에, 그같이 큰 차를 너나없이 서울 장안에서 끌고 다니면 그 교통은 어찌될까, 환경문제는 어찌될까, 유류소비문제는 어찌될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지금 그 꿈은 접었지만 SUV나 미니밴을 타고 다니는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동안 청소년들에게 사사건건 남들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말라, 타고난 적성을 찾아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고 가르쳐왔다. 그같은 가르침은 내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나만의 자동차 행보, 나의 철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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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뜨